28번째 생일.
생일을 맞아 어떤 노래를 남길지, 또 어떤 말을 함께 남기면 좋을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올해는 괜히 마음의 문턱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의 마음과 닮은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무언가를 크게 선언하기보다는,
지나온 시간들을 천천히 돌아보고,
오래 머문 자리의 온기를 품은 채
조용히 다음 장면으로 걸어가 보려는 마음에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번 커버는 급하게 녹음해서 솔직히 썩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그래도 완성도보다 지금 이 시점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올려봅니다.
오늘 저는 28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한국 나이로는 29살이 되어 맞는 생일이라,
어쩐지 20대의 마지막 생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축하보다 회고가 먼저 떠오릅니다.
몇 살이 되었는가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떤 계절들을 지나 여기 서 있게 되었는지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적어도 오늘까지는 샌드박스에 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익숙한 리듬으로
그냥 계속 살아가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쯤,
아주 조용하게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건강도 다시 돌보고 싶었고,
삶의 리듬도 다시 맞추고 싶었고,
너무 익숙해져 무뎌진 제 삶에
새로운 동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Apple Developer Academy였습니다.
성인이 된 뒤 거의 모든 순간을 샌드박스와 함께 보냈던 저에게
그 선택은 단순한 퇴사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익숙한 둥지를 벗어나는 일이었고,
제가 오래 의지해온 삶의 방식에서 한 걸음 밖으로 나오는 일이었습니다.
취업도 어렵고 시장도 불안한 시기에
이 선택이 맞는지 자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 시점에 꼭 한 번,
제 삶을 다시 흔들어볼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고요.
아카데미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고,
생각보다 잘 배우고 있고,
생각보다 이 시간을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이곳에서 만난 러너 분들, 멘토 분들, 스태프 분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익숙한 삶을 벗어나도 괜찮다는 것,
다시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
꼭 늦은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라는 걸
이곳에서 조금씩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20대의 끝자락에 서서 돌아보면,
제 20대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자라 늘 소리 가까이 있었고,
동시에 컴퓨터와 영상, 인터넷과 화면 속 세상에 더 크게 마음을 빼앗기던 아이였습니다.
예고에 가서 작곡을 배웠고,
마인크래프트와 유튜브를 통해 세상을 넓게 배웠고,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아
샌드박스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음악을 하고,
기획을 하고,
운영을 하고,
프로젝트를 굴리고,
데이터를 보고,
개발을 배우는 사람으로까지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늘 하나의 이름으로만 설명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음악을 하던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영상을 만들던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프로듀서였고,
누군가에게는 기획자였고,
누군가에게는 개발을 배우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이것저것 다 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제가 조금 헷갈렸습니다.
나는 대체 무엇으로 설명되는 사람인가,
한 줄로 정리되지 않으면 결국 애매한 사람 아닌가,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제 20대는 ‘나는 정확히 무엇이다’를 정리하는 시간이라기보다,
‘나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 배우고, 버티고, 살아남고, 다시 앞으로 가는 사람인가’를 확인해온 시간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제 20대를 함께 지나가 주었습니다.
중학교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의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과보다 먼저 그 시절의 공기와 표정,
그리고 제대로 인사하지 못하고 지나온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조금 더 불안하고, 조금 더 치열하고, 조금 더 서툴던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고,
처음으로 타지에서 살고,
음악과 진로, 자유와 외로움을 함께 배워가던 시절을 같이 지나왔으니까요.
샌드박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 20대를 가장 길고 진하게 함께 지나온 사람들입니다.
같이 밤을 새우고,
같이 마감을 버티고,
같이 결과를 만들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무너졌습니다.
좋은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샌드박스가 제게 회사이기도 했고,
학교이기도 했고,
무대이기도 했고,
전쟁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20대의 가장 큰 배경이었다는 점입니다.
트위터와 동인계에서 만난 분들은
제가 가장 솔직하게 취향과 감수성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좋아하는 음악과 농담,
새벽의 사담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었고,
그 세계가 있었기에 저는 조금 더 숨을 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카데미에서 만난 분들은
제 20대의 마지막 장면에 도착한, 생각보다 훨씬 귀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이분들은 제 20대의 끝을 함께 지나가면서
동시에 제 30대의 첫 장면도 같이 열어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개발을 새롭게 배우는 과정에서 만난 개발 커뮤니티의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경로로 개발을 시작한 사람도 아니고,
아직은 초보 개발자에 더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배경에서 나온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조금 엉뚱한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기도 했고,
남들보다 늦게 출발한 사람처럼 서툴게 배워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질문과 생각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함께 이야기해주시고,
힌트를 주시고,
경험을 나눠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혼자 버티는 시간만 길어질 줄 알았던 과정 속에서도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자주 느꼈습니다.
배우는 중인 저를 그대로 받아주고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유튜브를 통해 저를 오래 지켜봐 주신 분들께도 꼭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도티TV를 통해,
누군가는 그룹엠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커버곡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저를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어떤 이름으로 기억하시든,
어떤 순간부터 저를 알게 되셨든,
그 긴 시간 동안 저라는 사람과 제가 만드는 것들을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늘 가장 앞에만 서 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뒤에서 만들고,
정리하고,
기획하고,
고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그런 저를 발견해주셨고,
기억해주셨고,
응원해주셨습니다.
댓글 하나,
좋아요 하나,
오래된 영상 아래 남아 있는 짧은 말 하나,
가끔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켜봐 주는 시선 하나까지도
생각보다 오래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잘 믿지 못하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저를 기억해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셨다는 사실이
꽤 오래 저를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20대는
무언가를 계속 증명하려 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잘하고 싶었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어쩌면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 모든 시간이 꼭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불안 덕분에 더 배우려 했고,
그 결핍 덕분에 더 만들려 했고,
그 외로움 덕분에 더 연결되기를 바랐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저는
그 모든 부족함과 애씀과 시간이 겨우 모여 만들어낸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의 마지막 생일처럼 느껴지는 오늘,
저는 제 삶이 생각했던 대로 흘러오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흐름이 꽤 저답다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음악을 하던 학생이
콘텐츠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굴리고,
데이터를 보고,
개발을 배우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학생이 되는 삶.
조금 웃기고,
조금 복잡하고,
조금 예상 밖이지만,
생각해보면 참 저다운 삶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될지,
어디까지 가게 될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지.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전보다 조금 더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이름으로만 설명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조금 복잡하고,
조금 다면적이고,
조금 엉뚱한 모습까지도 전부 저라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올리는 이 노래는
단순한 생일 기념 커버라기보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시간들과 사람들에게 전하는 조용한 인사에 더 가깝습니다.
거창한 변화를 선언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오래 머문 자리의 고마움을 잊지 않은 채,
천천히 다음 계절로 걸어가 보려는 마음,
아직 완벽하지 않아도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는 마음,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더 단단하고,
더 저다운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이 노래와 함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
샌드박스에서 함께한 분들,
트위터와 동인계에서 함께해준 분들,
아카데미에서 만난 분들,
개발 커뮤니티에서 함께해준 분들,
그리고 유튜브에서 오래 저를 지켜봐 주신 분들이 있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제 20대를 채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훨씬 복잡하고,
훨씬 진한 20대를 살 수 있었습니다.
남은 20대의 마지막 1년은
조금 덜 조급하게,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저답게 살아가보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나.
그리고 오래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의 노래가,
제가 다 말하지 못한 마음까지 잘 전해주기를 바랍니다.